그 이후로 내 삶에서 아주 오랫동안, 섹슈얼리티와 바이올런스(violence)는 픽션과 지면(紙面)을 주된 영역으로 삼았다. 2012년의 인터넷은 ‘NO CUT 캠페인’03이 한창으로, 그때의 인상으로는 가상으로 그려지는 한 그 어떤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도 윤리적 갈등을 마주할 필요는 없다고 합의된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 몇 안 되는 블로그 이웃을 통해 접한 좁은 여론이었고, 당시 실제 사회(?) 여론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오타쿠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었던 ‘저는 현실의 여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라는 문장과 같이 가상과 현실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정서하에, 나의 취향은 폭력적인 가상을 가책 없이 빨아들이며 쑥쑥 자라났다. […] 그러면 이런 책은 영원히 공포의 책장 안쪽에 처박아 두고 없는 척을 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걸까?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 BDSM이 범죄와 착취의 온상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있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처하는 위험은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욕망이 논할 만한 욕망이란 얘기일까?
